도자기는 우주에 있는 별처럼, 늘 친숙하지만 만약 더 알려고 한다면 몹시 어렵고 낯설게 다가옵니다.
그 이유를 3가지로 나누면,
- 도예가, 매스미디어들은 감성적 문학적 언어로 도자기를 설명하려고 한다
- 미술사학자들은 역사적 미학적 언어로 도자기를 설명하려고 한다
- 자연과학자와 공학자 같은 연구자들은 요업공학, 지질학 언어로 설명하려고 한다
등으로 대별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의 도자기를 알려면, 위의 3가지 관점을 동원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해당 전문가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주식투자가 증권회사 직원과 경영학 박사들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닌 것처럼, 도자기에 대한 깊은 이해는 위의 3분야 전문가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3분야를 얕게 이해하더라도 이를 적절하게 잘 조화한다면, 도예가가 창작한 작품을 당사자가 말하지 못하는 심중(心中) 창작의도를 파악할 수 있으며, 미술사학자들 조차 파악하지 못한 옛 도자기의 미학적 요인을 발견할 수 있으며, 요업공학자 조차 미처 인지하지 못한 도자기의 구조적 요체를 잡아낼 수도 있습니다.
주식투자에서 대형 증권사와 투자사도 큰 손실을 얻어맞고, 개인투자자도 이른바 ‘텐배거[ten bagger, 10배 수익]’를 올리는 것은, 바로 내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미래의 불투명성’이 법인과 자연인, 그리고 우주 전체에 평등하게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도자기에는 ‘과거의 불투명성’이 짙게 작용합니다.
‘이렇게 화학, 물리, 지질학, 공학이 발전했는데, 도자기 따위에게 무슨 불투명성이 많다고 하는가?’ 하지만, 그렇게 자연과학과 공학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도자기는 불투명성이 도드라집니다.
그 이유는 바로 고온에 굽기, 고온소성(高溫燒成)에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섭씨 1200도 이상에서 구워버리니 그냥 요소들이 몽땅 뒤엉켜버리는 겁니다. 그래서 고도자(古陶磁)는 그 불투명성이 짙게 드리워져 있습니다. 섭씨 1200도는 인력(人力)만으로 가능한 극한 온도에 해당합니다. 유럽, 아프리카, 아메리카와 대다수 아시아 공동체들이 18세기까지 자기(磁器 porcelain) 제작에 실패한 것은, 소성 온도를 달성할 수 있는 요[가마]라는 형태를 구축하고, 화력(火力)을 낼 양질의 땔감과 가마 내부의 온도를 관제할 기법, 그 화력으로 시뻘건 색상으로 달궈진 자기가 스스로 뭉그러지지 않고 가마 속에서 불을 견디는 흙을 반죽하는 비법, 그 모든 것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현대 요업에서는 재료들에 있어, 태토[胎土(또는 素地)]의 성분과 성분비, 그리고 그에 따른 적정 소성온도가 이미 명기되어 판매되고, 가스[전기]가마에서 섭씨 1도씨까지 디지털 계기판에 의해 고온의 조절이 가능하다 보니, 구운 도자기를 살펴볼 때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지’라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불투명성이 거의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옛 도자기를 살펴보거나, 지금 장작을 때서 도자기를 굽는 전통가마로 작업을 해서 나오는 도자기는 그 불투명성이 아주 큽니다. 우선 가마[요]가 작가 내지 가문에서 제작한 자체 규격입니다. 아궁이의 크기, 가마의 높이, 폭, 기물 배치하는 방법, 장작의 화력, 아궁이 불을 얼마나 지속하는가, 어느 시점에서 화도(火度)를 확 올리는가, 어떤 시간 단위로 균일하게 점증시킬까, 초벌은 어느 온도에서 진행하는가 등등 너무나 많은 임의성이 있습니다.
전통가마를 사용하는 작가는 스스로 목적에 맞는 흙과 유약 배합비를 찾기 노력합니다. 노력이라는 말속에는 계속 가마소성을 한다는 것으로 비용이 대단히 많이 발생합니다. 보통 전통가마는 48시간 전후 10시간 계속 소성이라서 땔감의 비용과 인건비가 높게 들어갑니다. 흙[태토, 소지]의 이런 성분비, 저런 성분비, 이런 유약 레시피, 저런 유약 레시피 등으로 계속 실험하다가 파산을 맞을 지경에 이릅니다.
그렇기에 전통가마를 사용하는 작가는 한정된 경험치에서 특정 방법에 매몰되게 됩니다. 그 매몰을 다른 말로 바꾸면 ‘몰입’이라고 쓸 수 있는데, 요업공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그 무언가로 도자기 기형을 만들고, 이를 굽는 기술 속에 담기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 기법은 문자로 담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불가(佛家)에서 깨달음과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는 수행방법을 문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불립문자(不立文字)’라는 말로 표현하는 것처럼, 도자기를 빚고 굽는다는 것에는, 문자로 씌어지기 힘든 전통적인 기법론과 너무나 명쾌한 설명서가 붙어있는 현대 요업 방법론 사이에서 도예가, 학자, 언론인, 작가, 상인 등이 혼재되어, 도자기에 친숙해보고자 하는 마음은 점점 흐려지고, 어느새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본인을 발견합니다.
다시 정리해서 이제 초심자가 전문가급으로 접근할 수 있는 첫 단계인 도자기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역사적 흐름을 파악해 보시죠. 그러면 점차 안개가 걷히는 느낌이 드실겁니다.